제1화 재색겸비의 학생회장
팔랑팔랑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풍경만을 보면 누구나가 봄을 생각해내겠지만, 실제로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근접해있는 12월의 중순.겨울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추워지려는 시기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이 하츠네 섬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보통, 벚꽃은 봄의 끝과 함께 시들어버린다.
아낌없이 꽃을 흩뿌리기에, 그 광경은 애절하면서도 아름답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이 섬에는 벚꽃이 시들지 않았다.
1년 356일-계절에 관계없이 계속 피고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된건지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어째서 꽃이 계속 활짝 필 수 있는 것 일까.
10년정도 전까지는 시들어 있던것 같지만 왜 다시 꽃을 피게된걸까?
1년 내내,불가사의한 광경을 보고있기 때문인지, 이미 섬의 주민들은 그런 기본적인 질문조차 품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정말 신기하네~.
사쿠라이 요시유키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카자미 학원의 체육관에서도 팔랑팔랑 흩날려 떨어지는 벚꽃잎이 보였다.
마치, 이제부터 입학식을 치를듯 생각하게되지만 현재 부속 3학년인 요시유키가 본교에 진학하는것은 4개월정도 후의 일이다.
계절감을 무시한 벚꽃잎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더니,
「이봐,요시유키. 오늘은 어째서 전교집회가 열리는거냐?」
옆에 앉아있던 이타바시 와타루가 살짝 작은 소리로 물었다.
「글쎄......」
「당연하지않은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해서의 연락사항이다.」
고개를 갸웃하던 요시유키를 대신해 답한것은 반대쪽에 앉은 스기나미였다.
둘다 요시유키의 클래스메이트이면서 악우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가.이제 다음주니까, 크리스마스 파티.」
와타루는 감개에 빠져 속삭이고는 주위를 꺼리듯 더욱더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스기나미는 이번에 뭐할거야? 어차피 뒤에서 여러가지로 움직이겠지?」
「지금은 아직 기업비밀이다.」
스기나미는 의연하게 대답한다.
「단지,과거이래 최대규모의 축제가 된다....는 것만 말해두지.」
「뭘하려는지 네 맘이지만, 날 끌어들이지는 말아줘.」
「나도 참아줘.」
와타루와 요시유키가 동시에 말한다.
왜인지 이벤트가 많은 카자미 학원은 스기나미같은 트러블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 최고의 무대일것이다. 하지만, 요시유키들은 그의 권유에 동참해버린탓에 몹시 곤란을 겪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쉿,조용히 하세요.」
조금 앞쪽에 앉아있는 반장-사와이 마야가 뒤돌아보았다.
험악한 눈으로 요시유키들을 노려보고있다.
요시유키들이 일제히 어깨를 움츠림과 동시에 안내방송이 울려퍼졌다.
「지금부터,전교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소란스러웠던 회관 안이 서서히 조용해져간다.
전교집회에는 우선 교장의 인사가 있고, 이어서 교사쪽에서 몇마디 연락사항이 있다.그후에 이번의 주제인 크리스마스 파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단상에 올라간것은 학생회장인 아사쿠라 오토메이다.
「그럼 제가 연락사항을 전달하겠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관내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예년대로 12월 23일부터 25일에 걸친 3일단, 우리 카자미 학원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개최합니다. 일반인에게도 공개되는날이 23일,24일의 이틀간. 25일은 학원관계자들만의 후야제가 됩니다.」
막힘없이 흘러가는듯 이어지는 말.
때때로, 긴머리를 묶어올린 모습은 미소녀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와타루 등 몇몇 남자는 황홀한 표정으로 오토메를 쳐다보고 있다.
「저기저기,역시 오토메 선배는 예쁘지~? 이제 못참겠어!」
요시유키에게 얼굴을 기대더니, 소근소근 속삭인다.
「외모좋고, 성적좋고, 성격좋고, 상냥하고 확실한 사람이라 요리도 맛있다고 들었어.」
「.................」
「게다가,굉~장히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나, 오토메선배의 향기로 밥3인분은 가볍게 해치울수 있어, 이거 진짜로.」
「시끄러,와타루.」
요시유키가 귀찮은듯이 대답하자, 와타루는 「뭐 어때 괜찮잖아」라며 뾰로통한 얼굴이 됐다.
「나는 너완 달라서 멀리서 바라보는것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아아,나도 오토메선배같은 누나를 갖고싶어~.요시유키, 역시 네놈은 너무 부러워!」
「누나라곤해도, 그다지 진짜 누나인것도 아니고」
「더더욱 좋은거잖아. 빌어먹을!」
와타루는 그렇게 속삭이고는 분한듯 발을 동동 굴렀다.
확실히 요시유키는 수개월까지 아사쿠라 가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남매처럼 자란 소녀가 두명 있다.
한명은, 두살 연상의 카자미학원 본교 2학년인 아사쿠라 오토메, 그리고 또 한사람은 한살 아래의 같은 부속교에 재학중인 아사쿠라 유메이다.
세월로 따지면 십년 가까이 그녀들의 할아버지인 준이치와 4명이서 살고있었다.
부속 3학년이 된것을 기회로 준이치가 말하여 요시유키는 이웃집인 요시노 가에 신세를 지게되었지만,가족사이의 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나도 미인자매가 있는 집에서 살고싶어~.」
「지금은 같이 살지않아.」
「같은거야. 아사쿠라가에서 나왔다고는 해도 이웃집이어서는 같이 사는 것과 다름없다구.」
와타루가 끈질기게 속삭이는 와중에,
「그럼 모두들,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겨요.」
오토메는 대강의 설명을 끝내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보는 사람 전부 마음을 빼앗을 듯한 따스한 미소. 갑자기, 관 내 여기저기서 애인없는 남학생들의 한숨소리가 넘쳐나왔다.
「아아아아, 역시 참을 수 없어~ 오토메 선배. 젠장.」
와타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요시유키의 머리를 꽝하고 때렸다.
「아파! 뭐하는거야!」
「시끄러. 너는 이정도는 달게 받을 의무가 있다고!」
옆구리가 허전한 감정을 발산하고 싶은 것일까, 맞고있는 요시유키로서 보기에는 참았었던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주위의 남학생은 와타루에게 동감하는 듯 수긍하고있다.
「듣는 바에 의하면 지금도 저녁식사를 같이 먹고있는거 같잖냐. 집에 돌아가서도 오토메 선배를 만날 수 있다니, 너무 부럽다구!」
「뭘 말하는거야. 어쩔 수 없잖아?」
「크악, 이러니까 복받은 녀석은! 빌어먹을!」
와타루는 다시 요시유키를 때린다.
「그러니까, 아프다구....」
「조용히 해요!!」
무심코 머리를 감쌌을때, 다시 마야가 눈썹을 치켜 세워 요시유키들을 돌아보았다.
「역시 동경의 대상이야~. 오토메 선배.」
전교집회를 끝내고 교실로 돌아가는 도중, 요시유키의 소꿉친구인 츠키시마 코코가 복도를 걸으면서 후우하고 한숨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인망있고, 상냥하고, 미인이고......」
「그렇지! 뭐랄까 최고의 누나라는 느낌말야. 어이 이봐. 여자라도 동감하잖아. 아~ 부러워라 이자식은!!!」
코코의 말 도중에 끼어 말한 와타루는 그렇게 말하면서 쿡쿡 팔꿈치로 요시유키를 찌른다.
「....아직도 말하냐」
그 집요함에 질린 참에, 코코가 「아」하고 작게 소리를 냈다.
「소문을 들자면,말이지.」
그녀가 가리킨 앞에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오토메의 모습이 있었다.
「회장! 일반 방문객에 대한 지도건 입니다만-」
「오토메 선배, 파티 기간중 원활한 안내방송을 위해, 방송부와의-」
「요리클럽 주회 임시 식당의 식재료에 관한 것인데요-」
어째 교실에 돌아가는 도중 잡혀버린것 같다.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관한 건안이나 연락사항을 차례차례로 말한다.
학생회에 주어진 권한이 크기때문일것이다. 회장인 오토메에게 승인이나 지시를 구하러 모인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오토메는 적절하고 확실한 지시를 내려가고 있지만, 그녀를 둘러싼 사람수는 마치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큰일이네.」
그 모습을 보고 요시유키는 무심코 한숨을 쉬었다.
동정하고 싶어지는 번잡함이다.
「하지만, 굉장하네~. 척척 일을 처리해가고 있다니.」
「그래.....뭐랄까, 완벽? 이상적? 최강?」
코코와 와타루가 그렇게 말하며 서로 수긍한다.
「저기, 아카네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동감동감.」
「.....그렇네.」
코코가 동의를 구한 것은 하나사키 아카네와 유키무라 안즈, 이 두사람이었다.
그녀들 3명은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셋을 일컬어 「설월화」라 불릴 정도로 사이가 좋다.요시유키들도 함께 행동하거나 놀기도 하는 사이이다.
「오토메 선배는 전혀 점잔빼는 일이라던게 없고 누구에게든 평등하게 대하고 말야.」
아카네도 역시 호의적인 말을 꺼낸다.
듣고만 있다면 오토메는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학생회장인것 같다.
물론 요시유키에게 있어서도 이상적인 누나이기도 하지만 좀처럼 결점을 보이지 않는것도 아니다.
「예외도 있지만 말야.」
안즈가 살짝 중얼거렸다.
그렇다....확실히 누구에게든 평등하게 대하는 오토메지만, 유일하게 특별취급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요시유키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민중 하나였다.
「앗」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던 오토메였지만, 간단히 요시유키가 있는걸 눈치 챈다.
그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의 권위있는 표정에서 일시에 변하여 방긋 미소를 지었다.
「동생 군. 발견!」
「우왁!?」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오토메는 둘러싼 사람들을 밀어헤치는 듯이 달려오더니, 「에헤헤」하고 마음을 뺏길듯한 미소를 지으며 요시유키의 앞에 섰다.
「동생 군, 오늘 아침 등교할 때는 못만났지만, 확실하게 아침밥은 먹었어?」
「으,으응.....」
「늦잠잔거 아냐? 봐봐 머리카락이 떴어.」
오토메는 요시유키에게 손을 올려, 엉클어진 머리를 정돈한다.
그러더니 밀착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살짝 좋은 향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와타루가 「밥 세 공기는 너끈하다.」고 표현한 만큼 무심코 현기증이 날 정도의 좋은 향기였다.
「이,이제 됐어.」
요시유키는 당황하여 거리를 두었다.
「그것보다, 오토메 누나....아니 아사쿠라 선배, 일 도중이잖아요?」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생글생글 웃지만, 결코 괜찮지 않을 것이다.
주위에서는 두사람의 관꼐를 수상히 여기는 시선이나 질투,원망과 한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요시유키는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세요,,,,,라고 주위에 시선을 보냈을 때,
「이봐,일하라고.」
한명의 여학생이 요시유키에게 느물거리는 오토메를 재촉했다.
오토메와 같은 본교의 2학년이고 학생회의 부회장을 맡고있는 코우사카 마유키였다.
활발한듯한 얼굴 모양에 어울리는 짧은 머리와 건강한 미소, 행동적이고 친해지기 쉬운 성격의 소유자인 그녀는, 오토메와 다른 의미로 학생들의 우상이다.
「아, 마유키.」
「저기말야.....오토메. 사랑하는 동생의 뒷바라지에 불타는것도 좋지만, 모두 기다리니까 일을 마무리 지어야지.」
「이, 하지만-」
「하지만 이 아냐!! 오토메는 정말 동생에게는 약하네. 과보호라 해야하나, 떨어져있을 수 없다고 해야할까......」
「그렇지 않아~」
오토메는 요시유키의 밖으로 나온 옷깃의 훅을 가지런이 하면서 반론했다.
「설득력 제로. 그것보다, 너도 솔직하게 뒷바라지를 받고만 있는게 아냐!」
마유키는 휙 요시유키를 가리켰다.
마치 응하지않는 오토메로부터, 어째 우선순위가 바뀐것 같다.
「아니,저도 그만둬 달라고 몇번이나 말하고는 있는데 말이죠.」
요시유키는 주위를 염두에 두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제 어린애 취급은 그만둬 달라고 여태까지 수없이 간청해왔지만......
「하지마안~」
오토메는 불만족스러운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
「이처럼, 뭐...... 이런 느낌으로 뭘 말해도 들어주질 않아요.」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마유키에게 요시유키는 간절하게 말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오토메의 과보호에 대해서는 손쓸 수가 없는 상황인거다.
주위에서는 「무슨 사치스런 말을 하고 앉았냐!!!!」라는 질투의 시선이 찌릿찌릿 느껴지고, 와타루 등은 오토메가 보지 않도록 등뒤에서 몰래 발로 차기까지 한다.
「너도 큰일이겠네.」
마유키가 동정하듯이 슬픔의 시선을 보낸다.
「그렇게나 이상한 일이려나?」
「당연히 이상하잖아. 정말로 이상해. 이상하다구.」
「우-」
단언되어져 오토메는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 역시 싫지? 그만둬달라고 할 정도니까.」
「그런거야? 싫어?」
오토메는 그렇게 말하며 요시유키를 바라본다.
「그,그거야 나도 일단 남자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나이도 되었으니까 가능하면 그만둬 달라고.....」
「정말로 싫어?」
순간, 오토메는 울먹이는 눈동자를 보내왔다.
그「동생 군은 그런말 하지 않지?」라는 무언의 압박을 앞에 두면 그 이상은 무엇도 말하지 못하게 되버린다.
요시유키는 깨끗하게 항복했다.
「뭐,뭐어....... 때와 장소를 생각해 준다면야, 뭐, 그게, 그러니까 그렇게 싫지는....」
「그렇지!」
곧 울것 같던 표정이 확 바뀌어 활짝 꽃이 핀듯한 미소가 된다.
「동생 군에게는 역시 내가 곁에 있어야해.」
오토메는 「어때?」하고 가슴을 펴고 마유키를 보았다.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애번 같은 패턴으로 져버린다는걸 알게된듯 하다. 마유키는 하아 한숨을 쉬고 기개없는 요시유키를 노려보았다.
물론, 요시유키에게도 변명은 있다.
그렇게나 슬픈듯한 눈동자를 보게된다해도 떨쳐버릴수 있는 남자가 이 세상에서 대체 얼마나 있을까.
「어쨌든.....지금은 일!! 모두 기다리니까.」
이 이상 이야기해도 헛수고라는걸 깨달은 것 같다. 마유키는 다짜고자 오토메의 목깃을 붙잡아 그대로 기다리는 사람들 에게로 질질 끌고 간다.
「에엣, 아, 동생~군.」
연행된 오토메를 한숨을 쉬며 배웅하고 있는것도 한순간, 핫 하고 눈치챘더니 주위에서 뭐라 형태를 알수없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교실로 돌아가야지.」
위험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그 장소를 피하려 했었지만.......
와타루에게 등 뒤에서 꽉 어깨를 잡혀버렸다.
「저기, 요시유키.」
「뭐,뭡니까?」
「뭐랄까, 말하고 싶은게 산만큼 쌓여있다만, 너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거 같아서 말야. 이쯤에서 행동으로 표현해도 될까?」
와타루의 말에 주위의 남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요시유키는 도움을 구하고자 코코들에게 시선을 보냈지만, 그녀들은 동정하는듯한 얼굴을 한채, 잠자코 어깨를 움츠릴 뿐이었다.
「오~빠.」
누군가가 복도에서 말을 걸어온 것은 점심시간이 시작하자마자였다.
학생식당에 갈까, 아니면 매점에서 뭔가 사서 먹을까....하고 고민하고 있던 요시유키는 반대쪽에서 걸어오던 여학생을 보고 무심코 방어태세를 갖추고 말았다.
달려온 사람은 오토메의 여동생인 아사쿠라 유메.
오토메가 누나라면, 역시 함께 자란 유메는 요시유키에게있어 여동생같은 존재일것이다.
그녀도 오토메에게 지지않을 정도로 미소녀이고 학원내에는 비밀리에 팬클럽까지 존재하고 있다. 그정도로 인기있는 유메와 함께있는 것을 목격된다면, 또 오전때와 같은 꼴을 당할지도 모르기에.........요시유키가 경계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교집회가 끝나고, 와타루 들에게 오토와의 일을 몹시 힐문당한 참이다.
「여,여어....유메냐.」
「왜 그렇게 겁내고 있는건가요?」
「아니, 그런적 없어. 응」
「.................」
허세를 부리는 요시유키를 유메는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보다 무슨일이야?」
「아,그래그래. 오빠, 점심 어떻게 하실지 정하셨나요?」
「아니.....별로 누군가와 약속한것도 아니고.」
「그럼 함께 먹지 않을래요?」
유메는 생긋 웃으며 말한다.
그 미소를 보고, 요시유키는 다시 경계하고 말았다.
-설마 등쳐먹을 속셈은 아니겠지.
드물게 권유한 이상, 뭔가 뒷꿍꿍이가 있을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함께 먹는건 상관없지만, 학생식당에서?」
「아뇨」
「그럼 매점에서 뭔가를 사오던가?」
「틀렸습니다.」
남아있는 선택지가 무언가를 가리키자, 요시유키의 등에 쓰윽 식은 땀이 흘렀다.
꿀꺽 침을 삼키고, 겁을 내며 확인한다.
「설마......너가 직접 만든 도시락이라고는 하지않겠지?」
「저기~ 오빠?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는데요.」
유메는 마치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관자놀이 주변이 분노로 씰룩거리고 있었다.
「아,아냐....별로 깊은 의미는 없어.」
「마치, 제 손수만든 요리라면 문제가 있을듯한 말투네요.」
「그,그렇지 않아.」
요시유키는 당황하여 고개를 흔들었지만, 실제로 유메가 만든 도시락을 먹기라도 했다가는 오후 대부분을 양호실에서 신세를 져야하는것을 각오해야만 할것이다.
「......틀려요.」
「에?」
「언니와 사쿠라씨도 함께니까요.」
「그,그런가. 오토메 누나와 사쿠라 씨도 함께구나.」
요시유키는 후우 가슴을 쓰다듬어 내렸다. 정말로 도시락인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오토메가 함께라면, 적어도 제대로된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으음 그럼, 가자구. 그런데 어디로 가면 돼나?」
「.....여기.」
지금까지와는 태도가 돌변한 요시유키를 보고 유메는 불만스러운듯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중앙 건물에라도 가는것인가 생각했지만 그녀가 안내한 곳은 외외로 교장실이었다.
「어째서 교장실인거냐?」
「사쿠라 씨가 불러서 그래요. 자 들어가죠.」
유메는 가볍게 노크를 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열었다.
거기가 교장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느낌이다.
무거운 서양식의 문을 열자 그 앞쪽에 무언가 위화감있는 어떤 공간이 펼쳐졌다.
실내는 방주인의 취향에 맞춰 다다미가 깔려있고, 지금 같은 계절에는 코타츠까지 설치되어 있는, 너무나도 교장실이라고는 생각할수 없을정도의 순 일본식의 세상이 있었다.
게다가, 코타츠위에 있는 휴대용 풍로애 올려진 냄비가 좋은 냄새를 퍼트리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동생 군, 늦었네~. 먼저 먹고 있었어.」
「그래, 늦어, 늦다구! 기다리다가 지쳤단말야.」
오토메와 함께 요시유키 들을 맞이해준 여성은 요시노 사쿠라였다.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그녀는 얼핏 보아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그녀야말로 요시유키가 살고있는 요시노 가의 집주인이며, 보호자같은 존재이다.
더욱이, 겉모습이 몹시 귀엽고 어려보이기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은 좀처럼 믿어주지 않지만, 그녀는 엄연한 카자미학원의 교장이기도 하다.
요시유키가 들은 바에 의하면 몇개나 되는 박사학위를 가진 천재인것 같다.
사람은 겉보기에는 알 수 없다.....라는 전형적인 예일것이다.
그 사쿠라가 멍하니 있는 요시유키를 향해 어서오라고 손짓한다.
「그런 곳에서 서있지 말고, 어서 코타츠에 들어가.」
「저......이것은 도대체.....」
교장실에서 점심밥이라는 것만으로도 이상한거다.
그 이상으로, 설마 전골이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쿠라씨가 오늘은 추우니까 전골이 먹고싶다하셔서.」
「역시 추운 날은 전골이지.」
사쿠라는 유메의 말에 응응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녀에게는 여기가 학교 내부에다가 자신은 교장이라는 인식은 전혀 없는것 같다.
「하지만, 학교에서 냄비요리라니....」
「교실안에서만 안먹으면 되는거야. 옛날에는 옥상에서 전골을 먹었던 학생도 있었을 정도니까」
사쿠라는 의외의 내용을 선뜻 말했다.
「옥상에서!?」
「매우 귀여운 자매가 말이지. 언니가 특히 전골애호가 였었으니까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옥상에 코타츠를 설치해서 냄비요리를 먹었었어.」
「...................」
이상한 학생이 많은 학원이라고는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어째 과거에는 요시유키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사람이 있었던것 같다.
-그다지 과민하게 생각하지 않는편이 좋겠군.
요시유키는 태도를 바꾸어, 권유받은 대로 유메와 함께 코타츠 속으로 들어갔다.
전골은 닭고기가 맛있게 익은 백숙이었다.
「자, 접시와 젓가락. 동생 군, 뭐가 먹고싶어?」
「에......그럼 닭고기와 *시라타키(白??), 그 다음은 채소를 적당히.」
냄비에 가까이 갔더니 맛있을 듯한 냄새가 더욱 진해졌다.
확실히 추운 날에는 전골이 제일이다.
설마 학교에서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그러고보니, 동생 군네 반은 크리스마스 파티 때 뭘해?」
오토메가 접시에 전골을 담아주면서 물었다.
「아아, 인형극이래.」
「헤에, 창작물을 상연하는거야? 틀림없이 노점같은거라 생각했었어.」
「그렇네, 어디쪽이라고 말한다면, 오빠는 메이드 찻집같은걸 제안할거 같고....... 아니면 바니걸이나 차이나드레스라던가.」
오토메의 말에 유메가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요시유키는 그런 동생에게「이녀석, 실례의 말을 하는군」라며 화를 낸다.
특히 오빠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점이 건방지다.
「안즈와 아카네가 하고싶다고 제안했었어. 뭐, 나도 좀 재밌을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흐~응, 하지만 파티까지 별로 시간이 없는데, 연습같은건 확실하게 하고있어?」
오토메가 그렇게 말하면서 접시를 건네주었다.
요시유키는 하얀 수증기를 내는 배추에 등자즙을 뿌리면서 대답한다.
「뭐.....내 대사는 적은 이야기인듯하고.」
「엣, 동생 군. 대사있어?」
단 배추를 음미하고 있자니, 오토메가 흥분한 기색으로 요시유키의 앞으로 홱 몸을 쑥 내밀었다.
「저기, 어떤 이야기? 동생 군은 어떤 역이야!?」
「에, 아.....주,주역.....일려나, 일단은.」
오토메의 기백에 압도되어 횡설수설 대답한다.
아직 대본은 막 받은 참이기에 확실하게 어떤 역인지는 파악되진 않았지만, 대본을 쓴 안즈의 말에 의하면 로맨틱한 사랑이야기인것 같다.
「상대역은 누구에요?」
「......에, 코코.」
「흐~응, 코코 선배와 오빠의 러브 로맨스인가.」
「야, 야한건 안돼.」
복잡한 얼굴을 하고 중얼거리는 유메에게, 오토메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치켜올렸다.
「학원 이벤트에서 야한것같은게 있을리 없잖아요.」
「하지만, 동생 군인걸!」
딱 잘라 선언되어지니 요시유키는 반박할 말을 잃어버렸다.
「뭐, 그래도 언니 측에서는 다행인거아냐? 오빠가 인형극으로 바빠지면 이번 파티는 나쁜짓 안할테고.」
「으~응, 그렇네. 학생회의 전력을 스기나미 군에게 집중할 수 있는 건 큰 이익이네.」
「..................」
이 자매는 대체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고있는걸까.......라는 생각에 요시유키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지간한 문제학생처럼 여겨져 있었다.
「그래도, 기대되네~.」
「보러오지 않아도 되니까.」
오토메니까 연극장에서도 화려한 성원을 보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미리 예방선을 펼쳤지만, 물론 그녀에게 통용될리도 없었다.
마치 요시유키의 말이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반드시 보러갈게♪」라며 방긋 웃음을 짓고 있다.
-안되겠네, 이거.
말하는게 아니었어.....라고, 요시유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재밌을거 같네~.」
이런 대화를 사쿠라가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다.
「사쿠라 씨도 보러오실 건가요?」
「으~응, 크리스마스 파티날은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무릴지도.」
사쿠라는 오토메의 질문에 아쉬운 듯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한 동시에,「그것보다.....」라고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를 가리켰다.
「오토메, 육수가 거의 증발했어.」
「아, 그렇네요. 조금 불리는 게 좋겠어요.」
「그럼, 제가 할게요.」
그렇게말하며 지원한 것은 유메였다.
「엑!? 유,유메가 하는건가!?」
「왜 그렇게나 동요하는거야? 제가 솜씨좀 발휘한다는데, 뭔가 문제라도?」
「아니,이봐 유메는 그다지 요리는 익숙하지 않잖아.」
요시유키로서는 꽤 조심을 기한 말이었다.
이곳에는 오토메와 사쿠라도 있으니까 굳이 유메가 솜씨를 발휘할 필요는 없다 라는 말을 골라가며 설득을 해본 것이지만.....
「괜찮아요. 육수를 묽게하고 간장을 넣을 뿐이니까요.」
유메는 재미없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 간장병을 잡았다.
그리고, 요시유키가 말릴 틈도 없이 대량의 간장이 냄비속으로 모조리 흘러들어간다.
유메는 당황하여 옆에있던 병의 내용물을 쏟아넣었다.
「........유,유메야, 그거 술이야.」
「이,이것은 조미료용이에요,조미료!」
하지만, 그 분량은 너무나도 「조미」라 불릴 레벨이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냄비로부터 감도는 술과 간장이 섞인 냄새가 방 안에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강렬하게 시큼한 냄새 탓에, 눈의 상태까지 이상해질것같았다.
「.......................」
「.......................」
그 방안에 있던 전원이 침묵하며 원래는 닭백숙이었던 것의 잔해를 쳐다본다.
거품이 움푹움푹 생겼다 꺼지는 지옥의 전골같은 모양이 된 물체로 부터 외면하여 요시유키는 「자, 그럼」하고 아무일 없었다는듯 코타츠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는 급한 용무가 생각나서 슬슬 실례하도록 할까.」
마치 오래있으면 안되는 것 같이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오빠, 어디가는거에요? 아직 조금 밖에 먹지 않았잖습니까.」
등 뒤에서 유메에게 빈틈없이 어깨를 잡혀버리고 말았다.
「너,너말야, 이걸 나보고 먹으라고 할 셈이냐?」
「조,조금 실패해버렸지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마도.」
「아마도.......말이지.」
이건 이미 '조금 실패'라는 레벨이 아니다. 조금 전의 맛있어 보이던 전골은 잔영조차 없이 걸쭉한 마녀의 비약같은 액체로 변화해버린것이다.
설령 양을 분배하는것에 실패했다쳐도, 간장이나 술을 넣는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도, 어떻게하면 이런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신기하다.
「너......이건 좀.....」
「괜찮아요, 저 양호위원.」
뒷걸음치는 요시유키에게 유메는 활짝 웃어주었다.
-양호실에 가는것을 전제로 깔고 있냐.
그것까진 양보하는 셈 쳐도, 먹고싶다고 생각이 들게할 정도의 물건도 아니다.
「그,그렇다면.........우선은 사쿠라씨오 오토메 누나에게 시식해보라는건 어떨까?」
요시유키가 아무 말없는 두사람에게 이야기를 돌리자,
「나,나는 아까 먹었으니까 이미 배가 너무 불러버렸어.」
「나도 이미 한계야. 봐봐 나는 몸이 쪼그마니까.」
오토메와 사쿠라는 동시에 고개를 돌린다.
-도,도망쳤다.
이대로라면 싫어도 요시유키가 먹지 않으면 안된다.
「도대체가 말야, 유메가 쓸데없는 짓을 하니까.」
「.....하지만」
그 유메조차도 이번에는 침울해져 얼굴을 숙인다.
「하지만 뭔데.」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별로 오빠가 먹어주길 바라는거 아니니까 됐어요. 제가 먹죠.」
유메는 토라진듯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그다지 그녀도 악의가 있어 그랬던 것이 아니다. 단지, 조금 서투른 것 뿐이라는것은 10년이나 함께 살아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 정말!
요시유키는 각오를 다지고 코타츠에 다시 않았다.
「닭고기와 시라타키, 다음은 채소를 적당히. 그다지 시간이 남지 않았으니 빨리 하라구.」
「으,응」
유메는 침울한 표정을 풀더니 기쁜 얼굴로 접시에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오토메가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고 있다. 사쿠라도 「과연 요시유키 군이야.」라고 천연스럽게 웃고 있지만, 요시유키로서는 완전히 지뢰밟은 셈이다.
일부러 괴로운 길을 선택해버린 자신이 원망스럽다.
「자, 별로 무리하게 먹지 않아도 되니까요.」
내밀어진 접시에는 검고 끈적끈적한 액체, 그 안에 떠다니는 음식재료에서는 매우 시큼한 냄새가 흘러 나온다.
-이,이걸 먹으라는건가?
홀끗 유메를 보면 태연하게도 물끄러미 요시유키의 모습을 살피고 있으며, 오토메와 사쿠라는 방긋방긋 웃으며 요시유키를 바라보고있는 채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뺄래야 뺄 수 없다.
요시유키는 눈을 감고 힘껏 검디검게 물든 전골요리를 입안에 넣었다.
사람 좋기가 지나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때도 있다.
그런 귀중한 교훈을 싫을 정도로 몸에 새겼던 겨울의 오후였다.
「저기, 에트는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을 선물........뭐가 좋아?」
「그렇네에. 여러가지 있지만, 비밀로 할게.」
「어째서?」
「...............」
「이봐, 다음, 동생 군 대사야.」
오토메에게 어깨를 맞고, 요시유키는 「아파」하고 소리를 내었다.
멍하니 TV라도 보면서 인형극의 대본을 봐둘까하고 생각했었던 것이 잘못의 시초였다.
가끔씩 집에 와있는 오토메가 재빠르게 대본을 발견해 버린것이다.
「에, 뭐야뭐야? 인형극의 대본? 보여줘보여줘!!」
부터 시작하여
「그러고보니, 본 연극까지 별로 시간이 없지?」
가 되고,
「연습, 많이 해놓지 않으면 위험해. 그래, 누나가 연습상대가 돼줄게. 자, TV같은거 보지 말고 연습연습♪」
그리고.........지금에 다다랐다.
물론, 이 사이에 있었던 요시유키의 반론은 모두 봉살되었다.
「정말~, 확실히 하지않으면 실전에서 실패해 버린다구. 실패해서 창피를 당하는건 동생 군이야.」
「......죄송합니다.」
왜인지 당사자인 요시유키보다도 오토메 쪽이 의기충전 되어있다.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한 연습이었는데, 그녀의 연기는 묘하게 힘이 들어가 있다.
「그럼, 다음은 샤를에게 프리드 백작으로부터 러브콜이 오는 씬의-」
「아, 잠깐 기다려.」
이어서 다음 장면을 이행하려 했던 오토메를, 요시유키는 당급히 멈추었다.
「응?」
「자,잠시만 쉬자. 목이 말라.」
「정말 어쩔 수 없네. 잠시만이야.」
일어서서 부엌으로 가는 오토메를 배웅하고 요시유키는 크게 한숨을 토하면서 방바닥에 맥없이 가로누웠다.
-제법 힘든걸.
애초에 연기하는것에 익숙해지지않는다.
인형극이기에 자신이 무대에 설일이 없다지만, 역시 부끄러움이 생긴다.
이래서는 연극때 어찌될런지.......하고 눈을 감은 순간,
「이봐, 동생 군!!」
「네엣!」
오토메의 질책하는 소리에, 요시유키는 당급하게 벌떡 일어났다.
「나 참, 잠시 눈을 떼면 금방 이렇다니까.」
「면목없습니다.」
「자, 차끓여왔어.」
「아아......땡큐」
요시유키가 고맙다며 받은 후, 오토메도 자신의 차를 손에 들고 코타츠에 들어간다.
「근데, 이거 굉장히 좋은 이야기네. 쓴 사람이 유키무라 였다고 했나?」
차를 훌쩍훌쩍 마시면서 오토메는 다시 대본을 훌훌 넘겼다.
「응. 그녀석이 연극부였다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의외로 재능이 있었다는게 좀 놀랐어.」
「응. 나, 이런거 완전 잼병이라서......좀 부럽네.」
「오토메 누나도 한번 써보면 되잖아.」
「....써본적 있어.」
「헤에.」
「하지만,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것에 절망했어~.」
오토메는 비통한듯 흑흑흑하며 쓰러져 우는 시늉을 낸다.
「어떤거 썼는데? 보여줘.」
「시,싫어.」
「라는건, 아직 남아있다는거구나.」
「어,없어. 아하하, 무,물론, 이미 버렸다구. 그런 창피한거 남길리 없잖아.」
알기 쉬운 말투이다.
오토메니까 분명 서랍 안 같은 곳에 잘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왠지 갑자기 흥미가 생긴다.
-도대체 어떤 망상소설을 쓴거지?
그렇게 생각한 찰나,
「에잇!」
오토메가 딱 소리나게 머리를 때렸다.
「이상한 생각 했었지? 그것보다 연습하자,연습.」
「네,네」
언젠가 반드시 봐주겠어.......라고 가슴 속에 맹세하며 연습을 재개하려 했지만, 오토메는 대본을 손에 든 채, 몇번이나 어깨를 신경쓰는듯 목을 좌우로 돌리기 시작했다.
「왜그래?」
「으~응, 안하던 일을 한탓인지, 왠지 어깨가 결린것 같아.」
「어깨가 결려? 그게 이상해?」
아무 생각없이 손을 올려, 오토메가 손으로 누르고 있던 부근을 가볍게 주물러 본다.
「아앙! 응, 거기.....기,기분 좋은거 같기도....」
「이상한 소리 내지마.」
「하지마안~, 동생 군, 능숙하게 하고 있는걸.」
오토메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요시유키의 옆으로 이동하여 등을 보인다.
좀 더 주물러 달라는 것일것이다. 계속 같이 연습해 주었으니까 어깨를 주무르는 일 정도는 상관 없었지만......
「앗.....아앙!!」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를 낸다.
그 관능적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찌해도 참을수 없는 생각을 해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 내지 말라니까.」
이런 장면을 유메에게 들켜버리기라도 했다간....이라고 생각한 순간,
「불결해.」
「우윽!!」
어느새인가, 당사자 본인이 현관문에 서 있었다.
「저기 말야, 착각하지마. 이건....」
「아니, 농담이니까요. 별로 그렇게 초조하게 말하지 않아도 돼요.」
유메는 「신경쓰지 않아요.」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지만, 농담처럼 말하는 모습에는 눈동자에 위험한 빛이 서려있다.
「뭐,뭔가 볼일있었던건가?」
「아뇨.....언니가 여기에 와있을거라 생각해서요.」
「유메도 받아보는게 어때? 동생 군의 테크닉, 굉장해~.」
오토메가 말만 듣는다면 착각할 듯한 말을 한다.
「아뇨, 전 사양하지요. 동생의 존재는 신경쓰지 마시고, 부디 두분이서 어른의 시간을 즐겨주세요.」
조금 언짢은듯한 얼굴로 유메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어른의 시간이라니 뭔데?」
오토메가 멍한 얼굴을 하고 요시유키를 쳐다 보았다.
「후~암.」
요시유키는 크게 하품했다.
함께 저녁을 먹은 오토메와 유메가 돌아간 후, 계속 집에 쳐박혀 책을 일고 잇었지만, 시게를 보니 어느새인가 밤 11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슬슬 자려고 생각하면서, 손에 들고있던 책을 덮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하이텐션으로 사쿠라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야호-,잘지냈어?」
「.......................」
「응, 내 얼굴에 뭔가 붙었어?」
「아뇨........오늘은 어째 일찍 들어오셨군요.」
최근, 사쿠라는 일이 바쁜거 같은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언제나 늦은 방이 되어서다.
오늘같이 휴일에도 나가 근무하는 일도 많다.
「아, 응. 오늘은 생각보다 빨리 끝냈으니까.」
「일요일인데 수고하셨어요.」
요시유키가 수고를 위로하는 말을 하자, 사쿠라는 보고있는 쪽이 행복해 질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침대 구석에 털석 앉았다.
「미안해, 언제나 혼자있게해서.」
「아뇨....이미, 이런 생활에도 익숙해 졌어요.」
침대에서 자려했던 요시유키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준이치 할아버지에게, 갑자기 "요시노가에서 살아"라고 들었을 땐 깜짝 놀랐지만요.」
「아하하, 오빠, 뭐든지 갑자기 정해버리니까.」
사쿠라는 아사쿠라가의 당주인 준이치를 「오빠」라 부르고 있지만,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까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남매이기에는 나이가 너무 차이가 나 보인다는 것이 신경이 쓰이지만, 애초에 사쿠라의 연령 자체가 불명이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점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너희들도 슬슬 충분한 나이가 됐으니 한 지붕에서 사는 것은 곤란 하겠지."라고 하니까요.
더군다나, 갑자기 생각난듯이.」
「3월에 있던 졸업식 때 였었지?」
「네. 졸업파티에서 돌아왔더니 갑자기 였다구요. "이제 곧 부속 3학년이 되니까 수험공부에도 도움이 될테니까 좋겠지."라면서....」
「그 대신으로는 성적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보이지만?」
「윽」
악의없는 얼굴에게 들으니, 요시유키는 생각치도 못하게 말을 잃어버렸다.
「냐하하, 하지만 나로선 럭키였었어.」
「역시 혼자여선 쓸쓸하니까 말야. 요시유키 군이 이 집에 와주어서 기뻐.」
「그,그렇습니까?」
정면에서 듣자니 역시 부끄러워진다.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요시유키는 쑥스러움을 숨기려 조금 이야기를 둘러댔다.
「하지만, 사쿠라 씨는 그다지 집에 돌아오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그런거야.」
요시유키의 기분을 눈치챈듯이, 사쿠라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가끔씩 집에 돌아오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현관을 열면 즐거운듯이 단란한 소리가 들려오고,맛있을듯한 밥냄새가 풍겨와.」
「........................」
「그게 너무 행복해. 그러니까 일도 힘낼 수 있어. 오늘도 힘내서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자-라고 말야. 요시유키 군이 이 집에 오고나서 좋은 일 뿐이야.」
사쿠라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것이 단순한 입발림이 아닌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것을 알고 요시유키는 왠지 기뻐졌다.
자신이 있는것만으로 그녀는 이렇게나 기뻐해주는것이다.
「그래도.....몸조심 하세요. 가뜩이나 항상 늦게까지 일하시니...」
「응, 괜찮아.」
사쿠라는 그렇게 말하며 웃은 후, 그래그래.....라며 생각난 듯이 손에 들고 있던 큰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거, 함께 보지 않을래? 돌아오는 길에 대여점에서 빌려왔어.」
「......뭡니까, 그거.」
「*오오오카의 재판 DVD, 전 26화.」
「안봐요.」
「우와, 즉답이네. 냉혈한~.」
사쿠라는 토라진듯이 뾰로통한 얼굴을 지었지만, 이 시간에 이런 대량의 DVD를 볼 수 있을리 없다.
더군다나 전형적인 시대극이다.
시대극 팬인 사쿠라라면 어떨지 몰라도, 요시유키로서는 고통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일은 학교에 가야돼서 말이죠.」
「괜찮잖아, 쉬어버리면.」
붕붕 목을 돌리면서ㅡ 사쿠라는 교장으로서는 하지말아야할 발언을 한다.
「공부라면 내가 친절하게 하나하나 가르쳐줄게.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욱 굉장한걸로.」
박사학위를 몇개나 가지고있는 사람이 말하면 묘하게 무게있다.
다만, 겉모습으로서는 그렇게나 대단한 천재로는 생각되지 않지만.
「사쿠라 씨도 일해야죠? 게다가 오토메 누나가 화낸다구요.」
「우윽........」
오토메의 얘기가 나오자 겨우 포기한듯 하다.
「그렇네, 오토메가 화나면 무섭고. 그럼 내일은 혼자 쓸쓸히 보는 걸로 할게.」
사쿠라는 유감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금방 미소를 짓고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럼, 잘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탁 하고 문이 닫히자 콧노래와 함께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자, 그럼 나도 자볼까.」
잠옷으로 갈아입고 불을 끈 뒤 다시 침대에 눕는다.
커텐 틈 사이로는 여전히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는것이 보였다.
흐릿해진 시야가 서서히 명확해져 간다.
꿈 속에는 들어오는 독특한 감각이다.
요시유키에게는 타인의 꿈을 볼 수 있다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어째서 이런게 가능한건지는 자기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특이 체질인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요시유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타인의 꿈이 보여지게 돼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특수한 능력이라고는 하나, 타인을 곤란하게 할뿐인 힘이었다.
하지만, 오늘밤의 꿈은 항상보던 꿈의 형태와는 조금 다르다.
-이건.......내 자신의 꿈인가?
눈 앞에는 팔랑팔랑 무수한 꽃잎이 흩날리고 있다.
그속에서, 어릴때의 요시유키가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걷고있는 꿈이었다.
「어디로 가는거야?」
불안해진 요시유키가 묻자 앞에서 걷던 여성이 금발머리카락을 흔들며 돌아본다.
「좋은 곳이야.」
그 샹냥한 미소에, 조금 안심하게 된다.
「따뜻하고, 떠들썩하고, 밥을 왕창 먹을 수 있는 곳.」
「에, 저, 그러니까.....」
요시유키는 무심코 말을 더듬는다. 여성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왠지모르게 부끄러워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시유키의 그런 기분을 알아챈듯이, 그녀는 멈추어 요시유키이 얼굴을 쑥 내려다 보았다.
「사쿠라야. 요시노 사쿠라.」
푸른 눙동자가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요시유키는 쑥스러워져서 그만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러더니 그여성-사쿠라는 굉장히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순간적으로 후회스러운 기분이 엄습했다.
그녀의 그런 얼굴을 보고싶지 않아서, 요시유키는 힘껏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사쿠라 씨.」
매우 작은 소리였다.
「겨우 이름 불러주었구나.」
그렇게 말하며 정말로 기쁜듯이 요시유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더욱더 부끄러워졌지마느 결코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쿠라를 미소짓게 했다는 것이 기뻤다.
「그럼, 갈까.」
「응」
사쿠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에는 옆에서 나란히 걷는다.
불어오는 바람을 차갑고, 입김도 새하얗다.
하지만, 요시유키는 왠지 온기를 느끼며 꽃잎이 흩날리는 가로수 길을 걷는다.
그런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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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유혹에 빠져 매일10페이지씩 하겠다는 맹세를 깨버린 탓에 이제야 올립니다.
사실 후아....타자가 느린탓에 쓰는것만해도 5시간이나 걸려버렸습니다. 우엉어어어어
2화부터는 꾸준히 해야죠. 마침 하고있는 슈로대도 거의 다 꺴으니......
그런데 역시 글 쓸때마다 걸리는건 弟くん의 번역. 더 좋은 거 찾으면 바로 수정 들어갑니다~.
참 오토메 편 상,하권이 끝나면 제가 처음 산 콘프티크(아니 G'S매거진이었나?)에 실려있는 인기투
표 4주 연속 오토메가 1등을 차지한 기념으로 서커스에서 만든 어나더 스토리(짧습니다.)를 올리도록
하죠. 마지막으로 2화는 더 빨리 올릴게요..............
- 후냐~Mk-Ⅱ -
*시라타키(白롱): 전골에 쓰는 실모양의 아주 가는 곤약. 저기 한자 "롱" 은 우리나라 한자에 없더군요. 변형된 한자인듯하지만 귀차니즘에 의해 그냥 패스하기로.....
*오오오카의 재판: 에도시대 중기의 명재판관의 재판을 소재로한 야담. 이거 한자 찾느라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30분을 찾아도 나오질 않는데, 설마 옛날 사전에 고유명사로 나와있을줄이야......